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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여성비하 - 집단강간, 근친상간 본문
성경 속 여성비하 - 집단강간, 근친상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기독교의 경전 『성경』에 실려 있는 내용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목사의 설교나 사역자들의 입을 통해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해석이라는 것이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의적 해석이 얼마든지 개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경 해석에 관한 이론이 있고, 방법과 원리를 가르치는 해석학이 있다. 이를테면, 해석 방법에 있어서 자구적 해석, 풍유적 해석, 비유적 해석 등이 있는데,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 자의적 해석인 것 같다.
자의적 해석을 전제로 하면, 성경 내용 중에는 여성비하를 당연시하는 이야기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에서 구약성서에서 보는 여성비하, 근친상간, 집단강단을 지적하고 있다. 아래는 해당 부분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될 때 유독 정직하다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구원을 받게 된, 노아에 상응하는 인물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었다. 남자 천사 둘이 롯에게 천벌이 닥치기 전에 도시를 떠나라고 경고하기 위해 소돔으로 왔다. 롯은 천사들을 극진히 집으로 맞아들였는데, 얼마 뒤에 소돔의 모든 남자들이 몰려들어 롯에게 비역질[동성애]을 할 수 있게(달리 뭘 하겠는가?)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 밤중에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가? 그들을 우리에게 건네면 우리가 알아보겠노라=상관하겠노라(창세기 19장 5절).” 그렇다. ‘알아보다(know)’는 공인 판본에서 흔히 쓰이는 완곡어법으로, 여기서는 아주 우스운 것이다. 롯이 그 요구를 용감하게 거절했다는 것은 신이 그를 소돔에서 유일하게 선량한 사람으로 뽑을 만함을 시사한다. 하지만 롯의 영광은 그가 거절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 때문에 흐려진다. “형제들이여, 그리 못되게 굴지 마시오. 보시오, 내게 남자를 알지 못한 딸이 둘 있소. 그들을 당신들에게 내어줄 테니 마음대로 하시오. 단 손님들은 건드리지 마시오. 그들은 내 집 지붕 아래 들어왔으니 말이오(창세기 19장 7-8절).”
이 기이한 이야기가 다른 어떤 의미를 지닐지는 몰라도, 이 강력한 종교가 여성들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는 확실하게 말해준다. 공교롭게도 롯이 딸들의 처녀성을 두고 거래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곧 드러났다. 천사들이 기적처럼 폭도들의 눈을 안 보이게 함으로써 그들을 물리쳤으니까.
그런 다음 천사들은 롯에게 즉시 식구들과 가축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경고했다. 도시가 곧 파괴된다는 것이었다. 가족은 모두 피신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운이 나빴다. 그녀가 어깨 너머로 불길이 치솟는 광경을 보는 바람에(우리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신은 그녀를 소금기둥으로 변하게 했다.
롯의 두 딸은 그 이야기에 다시 잠시 출현한다. 어머니가 소금기둥으로 변한 뒤, 딸들은 산 위의 한 동굴에서 아버지와 살았다. 남자에 굶주린 그들은 아버지를 취하게 만든 뒤 관계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롯은 큰딸이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임신시킬 수 없을 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밤은 둘째 딸의 차례였다. 이번에도 롯은 너무 취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래도 딸을 임신시켰다(창세기 19장 31-36절). 이 일그러진 가족이 소돔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들이라면, 신과 그의 천벌에 공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롯과 소돔 이야기는 <판관기=사사기> 19장에서 섬뜩하게 반복된다. 이름 모를 레위인(사제)이 첩과 함께 기브아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노인의 집에서 후한 접대를 받으며 묵었다. 그들이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도시 남자들이 몰려와서 문을 두드리며 노인에게 남자 손님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롯과 거의 똑 같은 말을 했다. “형제들이여, 안 되오. 그리 못되게 굴지 마시오. 여기 처녀인 내 딸과 그의 첩이 있소. 그들을 내어줄 테니 욕보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몹쓸 짓을 하지 마시오(판관기 19장 23-34절).” 여기서도 여성 혐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욕보이든’이라는 구절에 특히 몸서리가 쳐진다. 내 딸과 사제의 첩을 마음껏 욕보이고 강간해도 좋지만, 남성인 내 손님에게는 적절한 존경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두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롯의 딸들보다 레위인 첩은 덜 행복한 종말을 맞이했다.
레위인은 그녀를 폭도들에게 넘겼고, 폭도들은 밤새도록 그녀를 집단강간했다. “그들은 아침이 될 때까지 그녀를 밤새도록 알아보고 학대했다. 날이 밝기 시작하자 그들은 그녀를 보내주었다. 동이 틀 무렵 그녀는 남편이 머무는 남자의 집 문 앞에 와서 쓰러졌고 날이 환히 밝을 때까지도 그대로 있었다(판관기 19장 25-26절).” 아침에 레위인은 첩이 문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대단히 무뚝뚝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일어나라, 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칼을 들어 첩을 뼈째로 열두 조각으로 잘라서 이스라엘의 모든 해안으로 보냈다”.
그렇다. 잘못 읽은 것이 아니다. <판관기> 19장 29절을 펼쳐 보라. 이번에도 관대하게 그것이 성경에 흔히 등장하는 기이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해 두자. 이 이야기는 롯의 이야기와 너무나 비슷하므로, 원고의 일부가 오래 전에 어느 필사실에서 우연히 잘못 끼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것은 신성한 경전의 출처가 잡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만들어진 신: 361-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