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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플라톤주의의 '노예의 도덕'이 아닌, '주인의 도덕'으로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

외톨늑대 ROBO 2021. 10. 1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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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주의의 '노예의 도덕', '주인의 도덕'으로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

쇼펜하우어의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이 프리드리히 니체다.

 

니체는 '노예의 도덕'을 가르치는 기독교적 가치와 부르주아 문화를 신랄히 비난했다. 플라톤주의에서 시작된 서양철학의 도덕과 가치는 파괴되어야 하고, 그래서 자신이 망치로 신을 죽였다고 했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죄-고통-심판의 사후세계'의 기독교적 부정이 아닌, '자유-쾌락-현실세계'에 대한 긍정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 위해 신까지 모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고통이란, 현실의 삶에 죄를 끌어들여 쾌락을 억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만약에 자신의 운명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내 탓이 아닌, 신의 탓으로 여겼다. 내가 불행한 사랑을 하게 된 것은 에로스 신의 탓이고, 전쟁에서 지게 된 것은 아테나 신이 적을 도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주인의 도덕'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현실의 삶을 긍정하였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현실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다.

 

아모르 파티 amor fati !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 긍정하는 인간,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 즉 '위버멘쉬 Ubermensch'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때, 헤겔 철학을 부조리한 사기꾼의 헛소리로 치부한 쇼펜하우어와 음악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바그너로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기대했던 니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하고 홀로서기를 한다.

 

이에 관해 고병권은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그린비 2003)에서 아래와 같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니체는 부르주아 문화의 피상성과 위선을 넘어서는 어떤 진정한 가치를 예술에서 발견했다. "예술이야말로 삶의 최고 과제이며, 진정한 형이상학적 행위이다" 그는 특히 음악에서 삶의 위안을 발견했다. 그에게 음악은 언어나 몸짓보다도 깊은 곳에 있는 '의지 그 자체' '사물 그 자체'였다. 그것은 부르주아 문화의 피상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진정성의 영역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특히 독일 부르주아 문화의 흉측한 측면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니체를 매혹시켰다. 헤겔 철학이 니체에게 적대자로 포착된 것도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헤겔은 니체가 혐오한 독일 부르주아지의 문화를 이성적인 것으로 합리화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감정을 포기하고 복종을 선택한 노예를 문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는 한동안 니체에게 독일 문화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현실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부정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건강하고 용기 있는 자가 내지르는 진격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극도로 피로한 자기 삶을 포기하면서 내뱉는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니체는 그리스 철학에서 볼 수 있는 삶에 대한 긍정이 쇼펜하우어에게는 전혀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바그너와의 결별은 쇼펜하우어와의 결별보다도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한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니체는 1876년 여름 바이로이트에서의 축제 때 바그너와의 결별을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때 그는 바그너 음악이 그 숭배자들에게 하나의 우상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새로운 제국의 탄생과도 같았다.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특징 없는 노예로 만든 부르주아 문화처럼 바그너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의 평준화된 무리로 만들었다". 바그너는 점차 독일 제국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었다. "바그너는 완전히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 중략 …)

 

바그너와의 결별은 결코 바그너 개인과의 결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그너의 이름을 빌려 전개된 니체 자신의 사유 전체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그는 바그너와 결별한 것이 아니라 이전의 그 자신과 결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1876년 여름 이후 니체의 탈선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참고 :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그린비 2003), pp. 29-30.


출처: https://nobopark.tistory.co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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